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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더 페이보릿] 말 못할 사정, 하나쯤 ? 차성덕 감독

2020-09-17 오전 2:45:02 추천0 조회수17

차성덕 감독


오래도록 잊지 못한 마음

꼭 찾고 싶은 단편이 있었다.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본 작품이었는데, 감독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 사진으로 액자 하나씩 만들어서 와라.” 영화는 삼촌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중학생 소년은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 사진을 찾아 사진관에 가보지만, 필름이 없으면 확대가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집으로 다시 돌아갔더니 문이 잠겨있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왔는데, 집주인이 문을 잠궈버린 것이다. 베란다를 타고 들어갔다가 이번에는 동네 주민에게 좀도둑으로 몰린다. 경찰서에 붙들려 가서도 뭐라 말을 하기가 어렵다. 도대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하루. 온종일 뛰어다니던 소년은 해질녘 부모님 영정 사진을 들고 버스에 올라탄다. 비로소 소년은 나지막하게 흐느낀다. 먹먹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마음을 잊지 못했다.


영주 윤재문_김호정_김향기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 영화가 차성덕 감독(이하 차성덕)의 첫 단편 <울지 않는다>(2007)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를 틀고, 난처한 표정의 소년과 대면한 순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제야, 찾아 헤맸던 그 영화가 <사라진 밤>(2011)과 <영주>(2017)를 연출한 차성덕의 작품이 아니라면 누구의 작품일 수 있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울지않는다 문준호


숨구멍, 상실을 감각하다

<울지 않는다>의 동환(문준호 분)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을 소화하지 못한다.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건 이 상황을 설명할 말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거대한 파도처럼 “후폭풍”이 밀려온다. 그렇게 동환은 버스를 타고 부모가 있었던 시공간에서 부모가 사라진 시공간으로 넘어가고 있다. <울지 않는다>는 그 전환의 순간에 대한 영화다. 동환은 아마도 오늘처럼 계속 애쓰면서 살아갈 터다. <영주>의 영주(김향기 분)도 그랬으니까.


영주 김향기

“<울지 않는다>와 <영주>는 같은 지점에서 끝난다.”

차성덕이 말했다. 열아홉 살 영주 역시 5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었다. 아직 어린 남동생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 삶의 무게에 짓눌려, 영주는 사고로 부모의 목숨을 앗아간 승문(유재명 분)을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누군지 숨기고 승문의 두부가게에 취직한다. 복수심에 불탔던 마음은 승문·향숙 부부와 가까워지면서 그들의 딸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바뀐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영주가 누군지 알게 된 승문과 향숙(김호정 분)이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영주는 그들을 떠난다. 승문의 집에서 자신의 집까지 걸어가던 영주는 한강 다리 위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려다 멈춘다. 영화의 끝에 다다라서야 처음으로 소리를 내서 우는 영주. 몇 번이고 울음을 터트려도 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제야 운다. 그리고 영주는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카메라는 오래도록 그 뒷모습을 지켜본다.

“일상을 지속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때로 그 안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삭제되는 순간이 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개인에게 달려있다. 동환과 영주는 살기로 했다. 삶이 희망차서가 아니라, 삶이 원래 그런 것임을 알면서 계속하기로 하는 거다.”

차성덕의 설명을 들으며 나를 키워온 상실에 대해 생각했다. 상실은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숨구멍 같은 건 아닐까. 그가 최근에 읽은 한 칼럼을 인용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의 피부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죠.” 그렇게 내가 피부의 숨구멍을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 나의 피부는 훨씬 더 세상을 예민하게 감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상실은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짓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좀도둑으로 몰려 경찰에게 쫓기면서도 동환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어른’들 역시 동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동환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그를 이렇게 괴롭히지 않을 텐데 싶었다.

“사정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자기 사정을 잘 모르는 때도 있고, 말할 수 없는 조건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사정을 드러내는 것이 영화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성덕의 영화는 ‘각자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각자의 사정’이란 차성덕의 표현으로 하자면 ‘진실’이다. 그는 “진실의 총량을 늘리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보통 진실이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400명의 사람이 있으면 400개의 진실이 있는 거라고, 그 진실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느냐가 ‘이야기꾼’으로서 자신의 그릇의 크기일 거라고 말이다.


사라진밤 김자영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동환의 얼굴은 <사라진 밤>의 일순(김자영 분)의 얼굴과 겹쳐진다. 50대 중반의 일순은 아픈 남편을 돌보며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집과 식당이 멀어 주중에는 근처 고시원에서 지내고 주말이 되면 집에 돌아가 남편을 보고 온다. 어느 날, 일순에게 형사(박원상 분)가 찾아온다. 지난 토요일 밤 남편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일순은 옆에서 자던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식당으로 출근한 참이다. 곧 남편이 질식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형사는 일순을 불러 심문한다. 그러나 일순은 토요일 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증거가 일순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형사는 쉽게 일순을 체포하지 못한다. 기억을 통째로 잃을 정도로 고된 일순의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빈곤은 무엇보다 시간을 앗아간다. 시간 속에서 쌓이는 기억이 ‘나를 나 자신’으로 만들 때, 시간을 빼앗기고, 기억을 잃은 자들은, 나 자신을 잃은 것이기도 하다. 차성덕은 강조한다. “하지만 일순은 끝내 스스로 선택하는 고귀한 사람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일순은 족쇄와도 같은 앞치마를 벗어놓고 형사를 따라나선다. 이건 일순의 선택이다. 이제 일순은 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하여 어디로 걸어갈지.

형사가 반복해서 취조 영상을 보며 일순에게 다가가듯이, 관객은 영화의 프레임을 통해 일순의 1분 1초와 만난다.

“영화를 매개로 한다는 건 카메라를 통해서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거다. 취조실 영상도 그런 의미로 사용했다. 진실의 총량을 늘리고자 했을 때, 우리가 과연 화면을 통해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내가 너의 사정을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성덕은 마음을 기울인다.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해보는 게”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주 김향기_차성덕

차성덕은 본인이 나선형으로 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가졌던 문제의식으로 자꾸 되돌아오면서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영화 역시 그렇다. 동환과 일순이 자신의 사정을 깨닫게 되는 과정에 있다면, 영주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만큼이나 승문과 향숙의 사정을 보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사람이다. 동환과 일순이 어딘가 닮았고, 일순과 영주가 서로 만나지만, 그의 영화가 반복이 아니라 변주이자 확장인 이유다.


문을 만드는 사람

“영주를 보호해줄 부모가 없는 것과 어른 역할을 해줄 사회가 부재한 것으로 나눠 생각했을 때, 당연히 후자의 문제가 더 크다.”

한 인터뷰에서 차성덕이 한 말이다. 한 사람의 문제에서 시작되는 영화들이 결국 사회에 말을 걸게 되는 셈이다. 작품을 통해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문이 없는 곳에 문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걷는데, 벽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빈 벌판에 문 틀이 하나 서있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데, 사람들이 굳이 문을 통과해서 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수많은 사건들이, 포착되지 않은 채로, 이 세계를 흘러다닌다. 그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 차성덕이 우리에게 열어줄 다음 문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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