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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 영화경] <미나리> 미나리로 뿌리내린 어느 가족

2021-02-20 오전 2:45:03 추천0 조회수547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가족은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다 비슷한 듯해도 개인의 사연이 개입하면 보다 특별해진다. 그래서 좋은 가족영화는 특별한 설정으로 관객의 이목을 끌다가 결과적으로 보편성을 띠며 공감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미나리>는 영화를 연출한 미국계 한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사연을 바탕으로 한다. 아칸소의 작은 농장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과 엄마 모니카(한예리)와 첫째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미국 외지의 시골 마을로 이주한다. 집이냐고는 계단 없는 트레일러에, 농장을 가꾸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은 벌판에, 많은 돈을 내지 않으면 끌어오기 쉽지 않은 농업용수에, 이곳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큰돈을 벌기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모니카와 다르게 제이콥은 농장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내와 남편이 함께 병아리 감별사를 병행하며 농장을 가꾸는 까닭에 아이 돌봄이 쉽지 않은 부부는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와 함께하기로 한다. 아이들은 영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와 가까이하기를 꺼리지만, 순자는 개의치 않고 손자들과의 시간을 즐긴다. 제이콥은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채소를 경작하지만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순자는 농장에서 떨어진 잡초 무성한 땅에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심는다. 

정이삭 감독은 제목의 ‘미나리’에 관해 “가족 간의 사랑”이라고 의미 부여한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는 게 이유다. 실제로 제이콥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농작물 재배에 힘쓰고 물을 대기 쉽지 않아 우물을 파는 등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다르게 순자의 미나리는 무심하게 씨를 뿌린 후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해도 스스로 잘 자라 무성해진다. 

그러니까, <미나리>는 전혀 생소한 땅에 뿌리내리기에 관한 작품이다. 정착하여 산다는 건 성공 신화와는 다른 결을 갖는다. 예컨대, 제이콥은 이주민의 성공 신화, 즉 아메리칸 드림의 스테레오 타입화된 면모가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 미국이 기회의 땅이지만, 아이들을 우선하고 안정적인 생활이 목적인 모니카와 가족과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에 온 순자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관련해 스티븐 연은 이 영화의 출연을 결심한 이유로 노스탤지어에 기대지 않는 사연을 꼽았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나리>가 제이콥을 중심에 두었다면 아메리칸 드림을 회상 조로 낭만화했겠지만, 아직 세상을 이해하기 힘든 데이빗의 시선에서 이들의 삶을 비춤으로써 가감 없는 정착의 풍경으로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스티븐 연은 “이 주제에 관해 다른 작품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미나리>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인상을 전한다.   


영화 <미나리> 공식 포스터

<미나리>에서 가족은 희망을 찾아 낯선 땅에 왔다고 해서 똘똘 뭉치거나 하는 식의 이상화된 형태가 아니다. 영화의 처음, 제이콥이 모는 차를 끌려가듯 모니카와 앤과 데이빗이 함께 차로 따라가는 장면은 이 가족 내에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걸 암시한다. 그렇게 가족이란 함께한다고 해서 서로 이해한다는 게 힘들고, 애쓴다고 해도 거리를 좁히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루의 끝에서 한순간이나마 사랑을 느낀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게 아니냐고, 그것이 ‘미나리’가 갖는 생명력이자 적응력이라고 말한다. 

정이삭 감독의 사연이 바탕이 된 <미나리>는 환경이 전혀 다른 미국에서 한국 가족이 온갖 변수에 맞닥뜨리는 삶의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의견이 달라 갈등하고 등을 돌렸다 다시 마주 보며 서로 의지함으로써 엉키고 설킨 형태로 땅에 뿌리내리는 보편적 가족의 초상이다. 정이삭 감독의 말을 가져오자면, “단순히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아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희망을 걸었던 세상 모든 부모를 향한 러브레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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